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양 우씨 (문단 편집) == 역사 == 시조 우현(禹玄)은 중국 [[하나라]] 우왕의 후손이다. 우현이 고려 때 우리나라에 와서 단양에서 살면서 1014년(고려 현종 5) 진사로 문과에 급제하여 정조호장을 지내고 문하시중 평창사에 추증되었다. 그의 10세손 [[우현보]]가 [[고려]] [[공양왕]] 때 '''단양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단양'''(丹陽)으로 하였다. 우씨(禹氏)는 '''중국 계통'''으로 '''[[하나라]](夏) [[우(하나라)|우왕]](禹王)의 후예(後裔)'''라 전한다. 그러나 문헌(文獻)의 [[실전]](失傳)으로 선계(先系)는 상고(詳考)할 수 없다. 우리 나라 우씨(禹氏)의 연원(淵源)은 우현(禹玄)이 고려 초 중국에서 건너와 단양(丹陽)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부터이다. 우현(禹玄)은 정조 호장(正朝戶長)을 지냈고,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追贈)되었다. 그후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거쳐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현(玄)의 10세손 우현보(禹玄寶)가 단양부원군(丹陽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우현(禹玄)을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단양(丹陽)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송사 고려전(宋史高麗傳)에 의하면 그 당시 고려인으로서 송나라에 귀화하여 고관이 되어 이름을 날린 이도 있었지만 송나라 사람으로서 사절혹은 상전을 따라 고려에 귀화하여 조정에서 벼슬한 사람은 더욱 많았다고 한다. 문헌(文獻)에는 [[단양군|단양]] 외에도 [[예안]]·[[영천시|영천]]·[[강주]] 등 4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 세거지(世居地)에 불과하며 현재는 단양 우씨(丹陽禹氏) 단일 본으로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